
호세쿠엘보를 좋아한다. 데낄라 중에서는 유명한 술이지, 이거. 처음 먹었던 건 대학생 연합 동아리 시절 친한 친구 생일에 다른 친구들이 사와서 마셔본 건데, 이게 신세계였단 거다. ㅋㅋㅋㅋㅋㅋ 지금에야 좀 더 비싼 술도 마실 수 있고 하지만(과연?) 그땐 저 정도면 진짜 훌륭한 거였다-물론 지금 먹어도 훌륭하지 않은 술이라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데낄라 하면 바로 호세쿠엘보가 생각난다. 딱 깠을 때 나는 달콤한 꿀향이 대박이지. 여담이지만 코스트코에 가면 2리터짜리 데낄라를 삼 만원대에 팔았던 걸로 기억나는데 그걸 둘이서 다 마시고도 모자라 집 앞 편의점에서 더 사온 건 내 주변 친구들이라면 다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래서 호세쿠엘보에는 뭐가 어울릴까. 선인장으로 만들었다는 이 술에는 아무래도 열정이 너넘치는 이야기가 어울린다. 마리아 푸조의 ‘대부’는 장대하여, 더 짙은 술이 떠오른다. 혹은 아예 물보다도 투명해 보이는 술이 좋다. 대부를 젖히고 나니 머릿속에서 마누엘 푸익과 라우라 에스퀴벨이 떠오르다 이번 술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게 양보하기로 한다. 책 제목부터 꿀 향이 뒤범벅된 다디단 영상이 연상되는 것처럼.
결국은 사랑 이야기다. 절대로 사랑 이야기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 생을 통틀어 사랑만큼 위대하고 훌륭하며 다양한 감정을 야기하는 것이 있겠는가. 다만, 인간이라는 포유류의 역사를 거슬러 보았을 때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와, 노래와, 시가 있어서 옥석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라면 흠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맛깔 나는 레시피와 함께 엮어내는 사랑으로 고전의 반열까지 들었으니 합격이다.
그리고 또한 여성의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소설의 골자를 엮는 주된 주인공은 모두 여성이다. 동시에, 서로를 얽어매고 구속하고 속박하는 자들도 여성이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것도 여성이지만, 그 생애 단 한 번뿐인 사랑을 단호하게 잘라내는 이도 여성이다. 주인공 티타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인 부엌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티타는 가족들을 위한 요리를 한다. 참으로 위대(偉大)한 사랑을 그린 위대(胃大)한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설명만 들어도 티타가 만드는 요리를 가족들이 먹고 싶어할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ㅋㅋㅋㅋㅋ 가족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심지어 티타의 ‘전’ 연인(?)도 그러하다. 그러나 티타가 하는 요리를 읽다 보면 어찌나 손이 가고 맛깔나 보이는지, 나라도 홀랑 먹어버리고 싶어지기는 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을 때 가나 초콜릿을 하나 사들고 배고프면 먹어야지, 하고 결심했기도 했고 ㅋㅋㅋㅋ
내가 초콜릿을 한 손에 쥐고 책을 읽는 동안 요리를 하는 티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눈앞에 있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건만 제 온 정신을 쏟아 부을 수 있으며 오직 자유로운 곳이라곤 주방뿐인 그 공간 안에서, 티타는 무심하게도 손을 움직였을 것이다. 식재료를 씻고 껍질을 벗기고 다듬고 크기를 맞추어 가지런히 자르고 물을 끓인다. 손이 많이 가고 간도 맞아야 하는 12가지의 요리를 차근차근 해내며, 티타는 아마 나처럼 데낄라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
12개의 레시피로 구성된 챕터를 읽을 때마다 12잔의 데낄라가 간절히 떠오르는 건 나뿐 만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대한 엔딩도 알싸하게 코를 감싸 쥐는 데낄라의 끝 맛에 어울리는 열정이다. 딴 이야기지만 나는 민음사 버전으로 읽었는데 제목과 표지가 어찌나 조야하게 느껴지던지, 그러나 챕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 재미에 푹 빠지게 되니, 순전히 내 생각이긴 하지만 고전소설 표지 디자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출판사 마음도 이해는 간다. 어쨌거나 100년 넘게 사랑받아온 이야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
이 소설을 읽다보면 데낄라가 왜 그리도 독한지, 처음 잔 속에서 느껴지는 달큰한 향과는 달리 무엇이 그리 화끈한지 맥이 잡힌다. 바로 멕시코의 정수란 이런 것이다, 하고 한권의 소설로 풀어 설명하는 느낌이다 ㅋㅋㅋㅋㅋ 별 수 있나. 멕시코 가기에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싸니 술 한 병과, 한권의 술 설명서를 함께 읽으며 간접적으로나마 멕시코 체험이나 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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