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도 여전히 존경하는 작가로 헤르만 헤세를 꼽지만, 어릴 때에는 정말 열광했었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은 모조리 읽고, 같은 작품도 출판사 별로 여러 개를 읽어 보기도 했으니까. 고전 코너에서 망설이다 집어 드는 책은 거의 언제나일 정도로 헤르만 헤세였다. 재수 생활 끝없는 문제집에 지쳐 휴식으로 잠깐씩 읽던 책은 ‘지와 사랑’이었으니, 정말로 좋아했던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중 특히 어릴 적에 가장 좋아하던 작품은 유리알 유희였지만, 지금은 영원불멸일 것처럼 모든 이들이 손에 꼽는 명작 데미안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 말은 엄청 유명하잖아. 새는 알을 부수어야 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알을 깨어야 한다. 한 때는 그 말을 신탁처럼 받들고 살았던 적도 있었다. 지금? 지금은 술은 마셔야 한다. 세상에서 안 좋은 건 모조리 없애야 하니까, 뭐 이런 말을 좋아하는 어른으로 자라버렸지만 ㅋㅋㅋㅋㅋㅋ 샹.
아무튼 헤르만 헤세의 소설은 깊다. 인물의 방황과 성장을 다채로우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다. 데미안의 주인공이 처음,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벗어나 냉혹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회를 마주하였을 때의 충격은 아마도 우리들이 흔히 겪는 성장통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어릴 적에 부모님 지갑에서 돈을 훔친 적이 있거든. 물론 나는 내 개인적 욕망을 위해서 한 도둑질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ㅋㅋㅋㅋㅋㅋㅋ
데미안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사실 참사랑 아닌지 ㅋㅋㅋㅋㅋㅋㅋ 주인공이 무의식중에 그린 자신의 이상형이 데미안, 혹은 데미안과 꼭 닮은 데미안의 어머니라니. 흔히 말하는 비엘 회로를 안 돌릴래야 안 돌릴 수 없게 만드는 소설이다. 참, 머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책 주인공은 데미안을 만나며 비로소 세상을 철학적으로 고뇌하게 되고, 세상이 가진 모순과 슬픔, 그럼에도 살아나가야 하는 피투성 등을 알아나가게 된다.
이 책은 당연 독일 맥주다. 아니, 이 책 뿐 아니라 헤르만 헤세의 많은 책은 독일 맥주와 견줄 수 있다. 맥주하면 독일, 독일하면 맥주인 것처럼, 내게 고전은 언제나 헤르만 헤세였으니까.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독일 맥주 중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바이엔슈테판 헤페바이스와 엮어내고 싶다. 이유는 하나지. 둘 다 너무 내가 좋아하니까.
뭐랄까, 나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처음 데미안을 읽었을 때에는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뭐가 그리 충격적이었는지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세상에 대한 감식안, 그리고 알을 통해 세계를 연상시켜 결국은 그 세계를 부수어야 한다는 그 말은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에 잔상처럼 새겨져 있었다.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안주하던 그 모든 세계를 부수어야 새로운 심장을 획득할 수 있다는, 그 깨달음은, 내가 처음 바이엔슈테판을 만났을 때 번쩍 뜨이던 눈과도 닮아 있다.
바이엔슈테판은 그냥, 맛있는 맥주다. 진짜. 필스너 계열을 사랑하는 나에게는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맥주. 비싼 가격에 손을 벌벌 떨며 사면서도 결국 또 사게 만드는, 부드러우면서도 맥주의 쌉쌀한 향기가 쏘는, 다채로운 맛이 있는 맥주다. 아. 쓰다 보니 중국에는 잘 안 파는데 진짜 마시고 싶어졌다 ㅠㅠㅠ... 암튼 그 정도로 맛있는 맥주여야 데미안을 끌어들일 수 있겠다. 나에게 고전의 신세계를 알려주듯 맥주의 신세계를 알려준 바이엔슈테판. 꼭 마셔보길 바란다. 정말.
어울리는 건 깊은 가을, 민음사 시리즈 중 데미안을 들고, 잔은 투명한 유리잔이 좋을 것 같다. 우아한 곡선이 있고 입술이 닿는 부분은 얇으며, 튤립처럼 생긴 잔이면 더 맥주가 맛있게 느껴지겠지. 차갑게 식혀놓은 맥주를 따라 한 입 그 거품 반 맥주 반으로 입을 헹구고 데미안을 읽고 싶다. 알을 부수려는 새는 세계를 부수려고 한다, 라는 문장을 고요히 되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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