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에 대해서는 정말 문외한이다. 맥주에 대해 쓰라고 한다면 농담이 아니라 다섯 장 정도는 쉬지 않고 쓸 수 있겠지만, 와인에 대해서는 포도로 만들었다? 알콜 농도가 12도니 꽤 높구나? 정도가 전부다. 그런 의미에서 모스카토 다스티는 꽤 기억에 남는 와인이다. 오, 와인도 맛있구나, 맛이 다르구나, 라고 생각하게 한 첫 와인이므로.
처음이라고 하면 진짜 좀 기억에 오래 남지 않나? 제일 처음 했던 연애가 20살이었나, 21살 언저리였다. 그 연애가 아주 잘한 연애라고는 전혘ㅋㅋㅋㅋㅋㅋㅋㅋ 말할 수는 없지만-물론 나의 잘못을 모두 포함하여- 제일 오래 기억에 남을 연애일 거라고는 생각했다. 거지같은 놈을 처음으로 만났던 연애는 다른 의미로 기억에 남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샹.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모스카토 다스티의 달달함과 첫 짜릿함에 어울리는 책을 골라보려고 한다.
그러면 그게 어울리겠다. 나의 첫 십구금 소설. 아니, 인터넷에서 흔히 떠도는 야동이나 야설말고. 진짜,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빨간 딱지가 붙은 소설. 심지어 내가 한창 그런 빨간 딱지에 환장할 미성년자 나이에 읽은 책-물론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어마어마한 집중력으로 읽고 나온 책-이니 나의 처음 경험한 맛있는 와인 경험담에 어울릴 책 같다. 지금은 맛과 비쥬얼 모두 검증하고 있으니 나에 관해서는 전혀 상관하지 말기를 바란다. 술이나, 책이나, 기타 모두.
읽기는 18살 가을에 읽었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을 꾹 끌어안고 20살이 된 1월 1일 성인이 된 기념으로 사버린 책도 바로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다. 그 이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도 좋아했는데, 두 작가 느낌은 다르지만 무라카미 성을 쓰는 사람들은 다 이런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고등학생에게 그 내용은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 마약에, 난교파티에, 동성 섹스까지. 처음 이걸 도서관에서 읽었을 때에는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항상 도서관 맨 안 쪽 총류에서 100 책장 사이 자리 잡고 읽었으므로- 번뜩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할 정도로 노골적인 내용의 충실성에 잠깐 할 말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왜일까. 달콤하지만 충실하게 취기를 올려주는 모스카토 다스티를 떠올리게 할 만큼, 그 책은 시종일관 야하면서도 나른한 우울을 담고 있었다. 즐겁기만 해야 할 마약과 섹스의 파티 속에서도 책 속의 인물들이 느끼는 슬픔과 우울과 처절함은 느릿하고도 다정하게 파고든다. 빠져나올 곳 없는 쥐들이 공포에 질리거나 분노하는 대신 체념 속 환각을 맛보듯이, 도저히 공감할 수 없지만,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이해하게 만들 것처럼.
교복을 입고 도서관 구석 책장에 박힌 채 빨간 딱지가 붙은 소설을 읽었다. 그 때 마침 입고 있었던 남색 바탕에 녹색과 붉은 체크무늬가 교차되던 교복 조끼가 기억나니, 아마도 가을날이었던 것 같다. 누구에게 들킬세라 조심스럽게 다 읽은 책을 책장 속으로 밀어 넣고 도서관을 빠져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니 그 하늘이 노을과 오후의 경계였어서, 그게 참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이 전염되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그렇게 세상을 향해 여러 가지를 묻고 싶었다. 결코 대답을 들을 수 없는 것들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20살이 된 기념으로 서점에 들린 내가 그 책을 결국 사게 된 이유는. 거기다 30프로 할인 프로모션이 붙어 있었던 것 또한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지금도 내 방 책장을 차지하고 있는 이유의 5할은 넘어 있었겠지.
뜬금없지만, 제목도 너무 예쁘지 않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라니. 새벽녘, 커다랗게 뜬 달이 아직 지지 않은 채 더러운 뒷골목을 비출 때, 그저 한 방울, 유일하게 맑게 빛나는 깨진 유리조각을 설명할 때 쓸 것처럼 느껴지는 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책 속의 모든 모순과 슬픔을 그저 쾌락과 즐거움으로 시야와 뇌 속에서 없애버리고파 하는 주인공의 독백에서 끊임없이 느껴지는 그 감정은, 그 제목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살려낼 수 없는 백미라고 생각한다. 전혀 의미를 모르겠는 ‘모스카토 다스티’, 일곱 개의 음절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국어적 우아함을 닮은 채로. 참고로 나는 아직도 모스카토 다스티의 뜻을 모른다. 앞으로도 아마 궁금해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모스카토 다스티 한 병 주세요, 하면 되니까.
모스카토 다스티는 그리 비싼 와인은 아닐 테다. 너무 비쌌으면 내가 안 샀을 테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리 비싸지 않지만 용량이 꽤 크고 달달한 와인이다. 이런 책을 왜 내가 달콤한 나의 인생이나,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들처럼 달달한 연애 소설과 안 이은 이유는, 우린 알잖아. 인생이 존나 내 뜻대로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ㅋㅋㅋㅋㅋㅋㅋㅋ 맛있고, 달콤하고, 그렇지만 많이 마시다가는 훅 취하고. 예쁜 색깔과 착한 가격에 들었다가는 다음날 어마어마한 숙취와 하루 종일 마음에도 없는 데이트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한없이 투명한 블루. 가없이, 끝없이 투명하게 느껴지지만 결코 투명해지지는 않는 엷은 푸른색처럼. 달콤하게 목을 넘어간다고 12도짜리를 계속 먹으면 안 되듯이, 일상과 소설의 경계를 명확히 해보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는 별도로 제목 덕에 봄베이 사파이어가 떠오르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래도, 봄베이 사파이어는 누가 봐도 파랗잖아? 한없이 투명에 가깝지는 않으니, 끼워 맞춰본다. 어쨌거나 더 이상 나도 별 할 말이 없네. 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이렇게도 여러 번의 사족이 붙는다고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이제 모스카토 다스티를 먹으러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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