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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고 한다면, 지금도 대학교 시절, 그 커다란 책을 끼고 기숙사 1층으로 내려가 죽어라 사이클을 돌리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때 만들어놓은 칼로리 소모는 올라가자마자 마셔버린 맥주 덕에 모조리 제로 베이스가 되었지만. 아무튼 어느 쪽인가 하면 뼛속까지 문과인 내가 처음으로 매료를 느꼈던 이과 계열 책이 아니었나 싶다.

 

 

 

스스로도 책 투정, 책 편식이 심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는 바이다. 가장 선호하는 것은 십진분류표에서 800, 소설이나 문학 계열이고, 차례로 역사와 철학, 사회 과학을 지나 맨 마지막으로 내려가 버리는 것은 항상 400, 500번대를 차지한 이과 계열이었다. 그러나 또 문학 소녀 취향은 버리지 못한 탓에 밤하늘에 대한 동경은 언제나 마음 구석에 머물러 있었다. 그 책장 구석에 오도카니 남아 있는 검고도 커다랗고, 지나치게 말하자면 고리타분해보이는 책을 고르게 된 것은 바로 그 이유였다.

 

 

 

사실 코스모스에 대한 기억은 별로 잘 남아 있질 못하다. 그림이 한 가득, 게다가 다리로는 한창 사이클을 돌리고 있는 도중이었으니 어디 눈에 들어와도 머리에는 입력이라도 되었겠는가. 다만 그 당시 읽었던 느낌으로는 꽤 낭만적이었다는 모호함만 어렴풋하다.

 

 

 

그래서 어쨌거나 코스모스를 통해 칼 세이건을 알게 되었고 흥미가 생겼던 차에,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책은 표지만 보아서는 전혀 흥미가 없게 생겼다는 것부터 먼저 말해야겠다. 어쨌거나 독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한 마디 하자면, 문학을 제외한 나머지 학문적 계열의 책들은 표지와 디자인에 조금 신경쓸 필요는 있다고 본다. 돋움체 아니면 고딕체, 심할 경우에는 바탕체까지. 이래서야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겠는가. 학자가 보는 책이라고 한다면야 할 말은 없지만, 학자가 아니라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읽히는 것이 책으로서도, 글을 쓴 작가의 입장에서도 바라는 바라고 감히 예견해본다.

 

 

 

그러나 따분함 그 자체로 보이는 표지와는 달리 책 내용은 그야말로 매우 흥미로웠다. 따로 책을 집으로 가져간 것은 아니었던 터라 직장 생활 속 시간 나는 틈틈이 보곤 했는데, 다음 챕터 내용이 궁금해지는 자연 과학 책은 나로서는 거의 처음이었다. 그만큼 칼 세이건의 강의 내용은 흥미로웠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그 이상 가는 진리에 대한 갈구와 겸손으로 가득차 있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는 최대한 자세하고 명료하게 풀어내는 문체였기에 훌륭하게 흡입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칼 세이건은 스스로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바는 모두 이전 세대에 진 빚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는 자신보다 데모크리토스를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는, 유머러스한 그 자신의 농담에서부터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그만큼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무한하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우주와, 그를 포용하는 진리에 대해 경애하며 탐구하는 사람도 보기 드물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만큼 읽으니 정말 술이 너무 먹고 싶었더랬다.ㅋㅋㅋㅋㅋ 훌륭한 것을 보면 저도 모르게 감동하듯이, 만취는 아니고, 적당히 취기 오른 눈으로 진심으로 그의 이론과 설명에 감탄하고 동감하며 읽고 싶었다. 다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술 마시면서 책 읽다가 울어버리는 경험...ㅠㅠㅋㅋㅋㅋㅋ 최근 맥주 마시면서 홍루몽을 읽다가 대성통곡을 했는데 약간 그런 비슷한 감정이 마구 들었다. 물론 집이 아니었기에 참았지만....ㅠㅠ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에서는 진리와 신, 그리고 드넓은 우주와 그를 통해 지각할 수 있는 인간의 유한성, 동시에 유한하기에 앞선 세대에 빚을 지고 후대에 조언과 나아갈 수 있는 과학적 토대를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성을 향한, 절실한 칼 세이건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술은 꽤 많았다. 봄베이라던가, 럼이라던가.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낙찰된 술은 막걸리였다. 이유는 좀 단순하다. 걸쭉한 막걸리의 질감이 아마도, 인류가, 아니 생물이 처음 만들어졌던 생명의 바다와 꽤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에서. 마시는 우리야 전혀 모를 일이지만 이 하얗고 무거운 액체 속에서는 수많은 효소들이 어지럽게 활동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생명의 기원을 말하고 싶어하는 이 책과 꽤나 부합하는 부분이 그럴싸하지 않나? ㅋㅋㅋ 싶었고... 최근 여러모로 많은 실험(?)을 한 끝에 포도막걸리, 바나나 막걸리, 심지어 치즈 막걸리까지 생겼다는데 나는 다양성의 처음은 결국 가장 단순함에서 시작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평 막걸리는 내가 알고 있는 담백한 막걸리의 가장 최근이라 굳이 지평 막걸리를 고르게 되었다. 그 외에 또 내가 좋아하는 순희 막걸리나 공주 알밤 막걸리, 전주 천둥소리 막걸리, 전주 모주, 백연 막걸리, 담양 대대포 막걸리...... 미쳤나... 왜 이렇게 많아....... ㅋㅋㅋㅋㅋ 모르겠다. 저런 막걸리와 어울리는 책은 또 따로 생각나겠지.

 

 

 

그러니까 결국 나는, 한국 들어가면 지평 막걸리에 파전 찐하게 먹고 싶다는 말이다. 먹으면서 해물 파전에 들어가 있는 오징어의 10개 다리를 보며, 우리 인간의 손가락은 결국 지느러미가 10개인 물고기에서 진화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잠깐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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