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함께하는 리뷰

나의 동양고전 독법-강의 - 백세주

habanera_ 2019. 9. 17. 21:10

 지금 마시고 있는 건 앞서 말했던 칭따오 전맥백비, 시간은 중국 시간으로 1240분이 되겠다. 저녁 아니다. 아직 아침 해가 쨍쨍한 정오. 그치만 낮술이야말로 홀로 사는 삶의 묘미가 아닐까하고 변명해보고, 안 먹히면 말고... 그나저나 내일이면 추석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까지 나와 있는데다가 23일 출장을 저번 주 금요일 저녁에나 끝낸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바이다. 그러니까 일단은 술이라는 변명이 들어 먹히기를 바라본다.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작년 11월 해외 장기 출장 허가가 난 후로 설날도 그렇고, 추석에도 집에 없었던 적은 처음이다. 그래서 싫은 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좋기도 한데... 애니웨이. 그래서 올 설에는 혼자서 백세주를 먹었다. 할머니가 담가주신 총각김치랑,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새우갈릭버터구이랑 같이.

 

 

 다른 집은 어떤지 모르겠다만 우리 집은 명절 때마다 경주 법주, 혹은 백화수복을 마신다. 근데 좀 빡치는 건 내가 마실 술이 없다는 거다. 우리 집은 큰집인 동시에 꽤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집이라 백부인 우리 아빠, 숙부, 그리고 아직 미성년자인 남동생-이지만 장자-, 거기다 내 사촌 남동생 요 넷이서 술을 마신다. 동생은 한 잔도 못 마시니 제외하고, 나이 드신 우리 아부지도 나만큼은 못 마시는데 시부럴... 나는 한 잔도 채 안주더라. ... 주면 병째로 마실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런 억하심정이었는지 비뚤어지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설 전 날까지 중국 가는 짐 싸기를 채 마치지 못했던 나는 서른 언저리 나이에 처음으로 명절 귀성을 포기하고, 수원 자취집에 홧김에 사온 백세주를 내려놓았다. 설 아침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드리자말자 새우를 볶고 백세주를 깠다. 네 다음 존맛탱... 참고로 새우버터갈릭구이는 겁나 쉽다. 깐 새우, 버터 반 숟갈, 간 마늘 한 숟가락에 소금 간이나 후추를 넣고-느끼한 게 싫으면 청량고추 추가-해서 휘휘 볶으면 바로 완성! 한국 가면 해먹으려고 벼르는 음식 중 하나다.

 

 

 그렇게 맛있게 먹은 것까지는 좋은데 사실 생각해보면 우습다. 담배는 백해무익이라고 했고, 술도 결코 내 몸 어딘가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무슨 백세주는 얼어죽을. 백세주 마실 시간에 스쿼트나 한 세트 더하고 건강한 라이프를 즐기면 200세 살 거 같은데? 그런 잡생각을 하며 백세주를 마셨는데... 물론... 안 마신다는 말은 안 한다.

 

 

 그래서 나는 백세주를 마시면서 어떤 책을 떠올렸냐고 한다면, 몇 개의 후보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나의 동양 고전 독법’, 조세희 선생님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 마지막으로 박준 선생님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세 분 다 내가 너무 존경하고 좋아하기 마지않는 분들이다. 특히나 신영복 선생님의 경우 책으로만 뵌 분이지만 날카로운 통찰력 하나하나가, 깊은 겸손과 그에 비례하여 짙은 감식안까지 합하여 현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하여도 틀리지 않다. 그래서인지 2016년 초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무척 가슴 아파하며 술 한 잔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번에는 강의-나의 동양 고전 독법을 한 번 서투르게나마 읊어보려 한다. 홀로 지내던 그 설날, 백세주 한 잔 깠던 기억을 떠올리며.

 

 

 책 내용을 간략히 말하자면 신영복 선생님께서 동양 고전을 읽으셨던 방법과 관련되어 있다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선생님께서 강의하셨던 내용을 토대로 써내린 글이라 마치 실제로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듣는 듯, 선생님 특유의 경어체와 정다운 울림이 그대로 느껴진다. 내가 신영복 선생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배운 사람, 그러니까 소위 가방끈이 긴 사람이 가지는 어떤 특징적이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아집과 독단이 없다는 것에 있다. 오랜 옥중 생활에서 여러 사람들을 두루, 그리고 오래 만난 탓인지 그 분의 어휘와 언어에는 인간과 관련한 정답고도 따스한 온기가 깊다. 편안하고 정다운, 그래서 기대고 싶어지는 부드러움이 있다. 백세주가 가지고 있는 고고하면서도 은근한 향취와 어울리는 문체다.

 

 

 제목 그대로 신영복 선생님이 동양 고전들, 그러니까 공자 왈 맹자 왈, 장자의 호접지몽이 나오는 그런 책들을 어떻게 해석해왔는지 이야기한다. 상선약수, 군자불어괴력난신,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등 고전에 나왔던 다양한 말들의 뜻을 신영복 선생님 스스로는 어떻게 해석해왔는지 조심스럽게 설명하는 글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조심스럽게다. 자신의 생각을 불어넣는 것이 아니고, 어거지로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고, 나와 타인의 거리를 이해하고 경계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느낌이다. 참 부드럽고, 참 강인하지.

 

 

 저와 다른 이를 경계하는 건 사실은 저 스스로 무너질까 위태해서, 그 위태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신영복 선생님은 아니다. 풀들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고 하는, 그런 강인함이다. 그런 강인함을 백세까지 이어가고 싶다는 것은 내 욕심이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과 백세주를 마시면서 그러고 싶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마신다는 말 말고...... 백세까지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면서도 나의 의견을 마냥 굽히지 않는 인내를 배우기 위해서, 부드럽지만 강하게 향을 잃지 않는 백세주와 함께. 그렇게 살다 보면 백세는 아니더라도 80까지는 마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삼으면서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