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사슬-칭따오 전맥백비(靑島全麦白啤)
오늘은 술 먼저 정하고 시작을 해보려 한다. 맥주부터 시작해서 소주, 백주, 사케, 위스키에 꼬냑까지, 술 종류는 너무할 정도로 많고 또한 나는 익명의 가벼운 알콜 의존자로서 모든 술을 사랑한다지만 특히 맥주는 아침부터 마셔도 좋아할 정도로 애정하는 술이다. 뭐 다들 그 전날부터 미친 듯이 마시고 느지막히 일어나서 라면과 함께 하는 해장 맥주 정도는 흔히 해보시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님 말고...
그 중 특히 좋아하는 맥주는 최근 알게 된 칭따오 전맥백비다. 이건 중국 본토 내에서만 마실 수 있는데 심지어 흔히 팔고 있는 술도 아니라 딱 우리 집 앞 마트에서만 본 적이 있다. 몰트로만 이루어진 술이라는데 몰라, 그런 어려운 말은 됐고 그냥 이걸 먹으면 화하게, 싸한 것이, 온 입이 시원하다. 몰랐는데 여기에 소주를 말아서 쏘맥으로 먹어도 훌륭한 맛이 나더라.
향이 나는 걸로 보아 느낌으로는 우리나라에 새로 나왔다던 칭따오 위트비어랑도 비슷하지만 그보단 덜 달고, 맛 자체는 좀 더 둔중하게 무게가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먹는 칭따오보다는 좀 더 가볍게 쏘는 맛이 향긋하다. 하얼빈에 비해서는 확실히 향이 강하고 그보다는 조금 무거운 맛이 난다. 이쯤 되면 어울리는 책은 단연 추리 소설일 테고, 소름이 오싹 돋아나는 살인 사건보다는 가볍게 즐기고 싶은 책들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교고쿠 나츠히코나, 미쓰다 신조는 아니라는 말이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한정 디저트 시리즈는 또 그러기엔 너무 가벼우므로, 다음에 나올 맥주에게 양보하도록 하자.
그러면 미나토 가나에의 꽃 사슬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책 이름도 예쁘고 표지도 예뻐서, 거기다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을 재미있게 보았던 나로서는 그 책을 읽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엷은 살굿빛 바탕에 파랗게 낙인찍히듯 엉킨 꽃과 사슬, 그리고 눈꽃 아래의 달. 표지만 상상해도 입 안에 달큰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퍼지는 것 같다. 덧붙여 미나토 가나에가 이제껏 썼던 묵직한 장르 소설을 생각하면 칭따오 전맥백피가 제격이다.
꽃 사슬이라는 어딘지 모르게 아름답고 잔혹한 어휘와 어울리게, 이 소설에 큰 줄기를 잇는 주연 삼인방은 모두 여성이다. 섬세하면서도 부조리할 만큼 냉혹한 여성들의 감정선을 저도 모르게 따라가게 된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나는 여자끼리 치고 박고 싸우고 연대하는 여성의 서사가 매우 좋다. 누가 여성 느와르 물 좀 만들어줬음 좋겠다. 막 대부나 신세계, 무간도를 여성 버전으로 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
어쨌거나, 마치 복잡하게 얽힌 나선 계단을 오르내리듯 이 세 여인의 이야기를 따라 책을 걷다 보면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하던 스토리 라인이나 호흡이, 마치 거대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공중 정원으로 통하는 문처럼 시야를 트이게 한다. 그 환한 시야 속에는 아마도 꽃이 있고 달이 있고, 눈 속에서 나는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 싶은. ㅋㅋㅋㅋㅋㅋㅋㅋ
책 장르 자체가 어느 정도 추리에 속해 있는 만큼 내가 따로 코멘트를 하는 것도 스포일러가 될까 주저된다. 그보다 사실 지금 얼른 술 먹고 싶은 것도 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책과 어울리는 계절이라면 산뜻하게 달이 뜬 쨍한 겨울날 밤, 시원하다 못해 이가 시릴 만큼 차갑게 식힌 맥주와 읽어보기를 권한다. 앞서 어울린다 말한 칭따오 전맥백피를 구하기 어렵다면 필히 바이젠 계열로 구해서 마셔보기를 추천한다. 둥켈이나 필스너는 좀 더 짙은 책이 어울릴 테니까. 눈 내린 다음 날 책을 펼치며, 그 청량함과 맞물리게 읽은 다음에는 어떤 감흥이 들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