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함께하는 리뷰

장미의 이름-장미주

habanera_ 2020. 3. 10. 00:43

 처음에는 작품과 술을 그야말로 술술이어나갔지만 가면 갈수록 쫌, 아니, , 이런 식으로 작품과 술을 연결 짓는 걸 힘들어했다가, 오랜만에 바로 매칭이 되는 작품을 찾았다. 나에게는 고등학교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는 친구놈이 있는데, 그 놈이 홍대에 산다. 알게 된 이유도 웃기다. 원래는 중학교도 같이 나왔는데 그 당시에는 모르다가 고등학교 시절 갔던 논술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다. 그래서 그 놈이랑 나랑 만나면 뭘 하겠느냐, 나이 찬 남녀 둘이 만나면 뭘하겠니? 술이나 먹어야지.

 

 

 근데 이 놈도 술은 좋아하는데 딱히 술이나 음식을 가리는 녀석은 아니라 한창 둘이서 맛도 모르는 안주를 덥석 덥석 집어먹곤 했다. 웃기지. 둘이서 그렇게나 먹어댔는데, 그 때에 제일 자주 갔던 술집은 홍대 운동장이었다 ㅋㅋㅋㅋㅋ 1차로 술배를 채워놓으면 배가 불러 안주는 먹기 싫고 술은 더 먹고 싶다. 그럴 때 편의점에서 술이나 덜렁덜렁 사가서 초콜렛이랑 까먹곤 했는데, 그때 마셨던 술 중 하나가 홍대 예술에서 파는 장미주였다.

 

 

 목이 긴 유리병에 라벨지도 예쁘게 붙어 있는 이 술은 색도 참 곱다. 말갛게 붉은 이 술은 맛도 참 달달해서, 술은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우리 엄마도 달콤해서 술 같지 않다며 두어 잔 마셨던 술이다. 뚜껑을 따면 달콤하면서도 꽃향 같은 게 올라오는 이 술은 내가 대학생 때에는 한창 마시다 지금은 좀 사양하는 술이다. 너무 달아. ㅋㅋㅋㅋㅋ 움베르토 에코의 책은 여전히 좋아하지만.

 

 

 장미의 이름. 얼마나 울림이 좋은지. 식물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지칭하는 그 다양한 명칭들을 좋아한다. 장미, 모란, 수국, 프리지아 같은 것들.

 움베르토 에코라는 작가가 거장임을 알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주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동시에 훌륭한 학자이기도 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작품을 먼저 접했던 나로서는 뜻밖이었지만 기호의 역사는 참 재미가 없었다. , 지금 말하고자 하는 건 장미의 이름이니까. 초등학교 시절 일요일마다 도서관에 콕 처박힌 내가 읽어댔던 셜록 홈즈부터 나는 아마도 탐정 소설, 추리 소설에 매료를 느꼈다. 그런 어린이가 커서도 추리소설에 환장하는 건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셜로키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을 읽고, 애거서 크리스티를 지나 가스통 르루, 존 딕슨 카와 함께 추리 소설의 황금기를 거쳐 노리즈키 린타로, 그 유명한 김전일의 할아버지인 긴다이치 코스케를 창조한 요코미조 세이시, 교고쿠 나츠히코 등등, 잡다하게 읽다보니 닿은 곳이 바로 움베르토 에코였다고 해야 하나. 고등학생 때 읽었으니 그 기억이 너무 가물가물하지만 어쨌거나 그때까지 나에게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가보다는 학자의 이미지에 더 가까워 책 읽기를 주저했던 것 같다. 읽었더라면 그 매력에 단숨에 빠져버렸을 텐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도 그런 책과 소설가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생각하면 아쉽기 그지없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 달콤한 이름을 가진 소설은 생각 외로 잔혹한 피비린내가 나는 추리소설이다. 장미처럼 화려한 꽃잎들을 헤치고 나아가면 찾을 수 있는 짙은 향기처럼, 꽤 두꺼운 페이지를 읽어나갈수록 장미 향기에 취하듯이 소설의 재미에 흠뻑 빠질테니. 참고로 이 소설의 배경 자체는 중세의 수도원에 방문한 두 사람의 수도자들인데, 이 소설을 쓴 작가가 해박한 지식을 지닌 움베르토 에코인 만큼 소설 자체를 읽음으로써 알 수 있는 중세와 관련한 지식은 그야말로 원쁠원이라고 할까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왜 달콤한 장미의 이름이고, 달달하기 그지없는 장미주냐고?? 물어보면 난 내쪼대로.... 고른거고. 그리고 장미의 이름이라고 제목을 지은 움베르토 에코한테 뭐라고 했음 좋겠다... ㅋㅋㅋㅋㅋ 그리고 굳이 나에게 그 달콤함을 장미의 이름이라는 작품에 연결했나하면, 늦봄과 초여름의 화려한 장미와 시들어버리는, 새까맣게 져버린 그 순간의 공간들과의 연결성을 생각했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아주 좋아하는 장미주가, 나이가 들어버린 나에게는 그저 그런 술이 되어버렸잖아. 그렇다면 결국에 영원한 것이라 믿을 수 있는 진리는 있는가, 하는 나의 개인적인, 그리고 인류보편적인 의문들과 함께 엮어볼 수 있는 것이라.

 

 

 장미를 좋아하지만 사랑한 적은 없다. 사랑 고백의 다른 말이라는 이 꽃을 따로 가장 아름답다 느낀 적도 없다. 내 취향은 모란이나 라넌큘러스 쪽이니까. 그러니까, 그러한 나의 개인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장미꽃을 가장 보편적인 축하와 사랑의 꽃으로 느낀다. 그런 거다.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꽃, 고백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 꽃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초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흔한 꽃일 수도 있다는 그 일반화의 논리에 우리는 아주 자주, 쉽게 속아 넘어가곤 하니까.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부족한 자아를 너무나 자주 느낀다. 또한, 그럼으로 인해 내가 읽어야 하는 책들, 내가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 보충해야 할 책들이 도서관이나 서점에 있음을 안다. 결국 내가 느끼는 부족한 지식과 행위에 있어 나는 또다시 살아 있음을, 내가 나아갈 길을 있음을 느끼는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지만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그저, 완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다. 어제보다 나은 나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성찰하는 인간이기에 나는 나를 가엾게도, 위대하게도 여긴다. 그러므로 천지창조 이래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또한 가장 볼품없는 존재의 이름을, 우리는 인간이라고 부르겠지.